보이스피싱 인출책 무죄, 대출 사기의 함정과 법적 판단

잠깐의 아르바이트라 생각했을 뿐인데, 통장을 전달한 일이 ‘보이스피싱 인출책’으로 의심받고 있다면 얼마나 막막할까요. 정말 범죄자가 된 걸까, 아니면 오해일 뿐일까. 이 글에서는 실제로 무죄가 인정된 사례와 그 판단 기준을 통해 억울한 상황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보이스피싱에 속아 범죄자로 몰린 사람들의 현실

최근 뉴스나 문자 한 줄만 봐도 ‘보이스피싱’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보이스피싱 조직의 말에 속아 대출을 받는 줄 알고 자신의 계좌를 제공했다가 범죄자로 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나요? 오늘 소개해드릴 사건의 피고인 B씨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용접 일을 하던 그는 일거리가 줄자 ‘대출이 가능하다’는 카카오톡 안내를 받고 자신의 신분증과 통장 사진을 보냈습니다. “거래실적을 만들어야 대출이 가능하다”는 말에 속아 입금된 돈을 현금으로 찾아 전달했을 뿐인데, 어느 날 경찰은 그를 보이스피싱 인출책이라며 체포했습니다.
다행히 법원은 “범행의 고의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 중 상당수는 여전히 억울한 처벌을 받거나 사회적 낙인을 감수하며 살아갑니다.
교묘해진 보이스피싱 수법의 실체

보이스피싱 조직의 수법은 점점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조직은 “대출금리가 낮아지려면 거래실적을 만들어야 한다”며 피고인에게 ‘회사 자금이 잠시 들어오면 현금으로 찾아 반도체 자재 샘플처럼 포장해 전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얼핏 들어도 이상하지만, 금융지식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법원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이 범죄조직과 공모하거나 보이스피싱임을 알았다고 단정할 근거가 없고, 오히려 “대출을 받기 위한 과정이라고 믿을 만한 사정이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즉, ‘이게 불법일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미필적 고의(범죄를 용인하는 마음)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법원의 판단, “고의 입증 부족으로 무죄”

실제로 피고인은 자신의 명의 계좌와 신분증을 그대로 사용했고, 은행에서도 신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지시에 따라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전달했을 뿐, 도망치거나 흔적을 감추려는 행동도 없었습니다.
법원은 이런 점들을 종합하여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범행의 공범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검찰은 종종 “상식적으로 모를 리 없다”며 인출책을 공범으로 기소합니다. 하지만 형법상 유죄가 되려면 피고인이 범행의 본질을 인식하고도 이를 용인했는지, 즉 미필적 고의가 입증되어야 합니다.
이 증명책임은 어디까지나 검사에게 있습니다.
검찰의 한계와 법원의 합리적 판단 근거
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 피고인은 대출을 받기 위한 legitimate(합법적) 거래라고 믿었고, 실제로 농협 창구에서 대출 신청을 하려는 모습까지 보였다.
- ‘외국계 회사 급여처럼 거래실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은 금융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이라면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럴듯했다.
- 피고인이 경찰 조사에서 한 “건설업 임금 지급을 위한 인출” 진술 역시, 대출 과정이라 믿고 거짓 지시를 따른 결과로 보인다.
따라서 피고인이 “혹시 불법일지도 몰라” 생각했더라도, 그 인식만으로 범행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결국 의심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가 있어야 유죄가 가능하다는 형사법의 기본 원칙을 다시 확인한 판결이었습니다.
단순한 무죄가 아닌 사회적 경고의 의미
이 사건의 의미는 단순히 한 사람의 무죄가 아닙니다. 보이스피싱 수법이 날로 정교해지는 현실에서, 범죄조직에 속아 이용당한 시민을 일률적으로 공범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판결문 말미에서 재판부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대부분의 시민은 ‘거래실적을 쌓는다는 명목으로 돈을 전달하는 일이 보이스피싱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수사기관의 사후 처벌보다, 보이스피싱 수법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더 효과적이다.”
법의 냉정함 속에 담긴 인간적 판단의 중요성
법은 냉정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상식과 현실 감각이 살아 있습니다. ‘몰랐던 죄’로 억울한 처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수사 초기부터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무심코 건넨 계좌, 단순한 심부름이 인생을 뒤흔들지 않도록 — 법이 보호해야 할 것은 ‘범죄자’가 아닌 ‘속은 피해자’입니다.